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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이런 법이"…인권침해 유발 인도집행법

등록 2018.10.0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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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 제도개선 입법 촉구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재개발 현장에서 세입자와 사업시행자(재개발조합과 건설업체)간 물리적 충돌과 인권 침해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세입자 강제퇴거와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현행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6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운영하는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은 지난 2일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집행현장의 문제점과 법제도 개선 심포지엄'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현행법이 법원의 세입자 강제퇴거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사실상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 소속 윤예림 변호사는 "채권자(재개발사업 시행자)가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용역), 소극적이고 미숙한 (법원) 집행관과 집행보조자 때문에 집행과정에서 위법이 자행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인도집행 현장에서는 인권침해 상황 등으로 위험 발생 요소가 많고 자해와 분신 등 저항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윤 변호사는 "판결은 차가운 서면에 기록되지만 이를 집행하는 일은 현장에서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입법자와 집행관, 지방자치단체의 진지한 고민이 요구된다"며 "그러지 않으면 1988년 상계동 철거와 2009년 용산 참사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공대호 변호사는 "철거 현장을 가보면 채무자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사업에 반대한다고 내 집에서 쫓겨난다는 것이 말이 되냐'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법이 있냐'라는 말"이라고 세입자들의 반응을 전했다.

 공 변호사는 "사업시행자는 채무자(세입자)들의 비협조로 인해 사업비가 증대된다는 인식이 앞서 충분한 소통 없이 인도집행을 강행하려 하고 채무자들은 강제수용절차나 인도집행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며 "이로 인해 채무자의 저항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재개발 현장 강제퇴거 집행의 근거가 되는 '민사집행법'에 흠결이 있다는 지적이다.

 공 변호사는 "민사집행법은 인도집행에서 유형력의 행사 주체, 유형력 행사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유형력 행사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관리 감독 규정도 두지 않고 있다"며 "이는 (법원) 집행관이 직접 채무자의 인신에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이를 넘어 채권자가 용역을 고용해 채무자 인신에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용인 내지 방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개발 현장 강제퇴거를 지휘하는 집행관의 행위를 규정하는 '집행관법' 역시 입법 미비가 심각하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집행관이 현장에 나서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이강훈 변호사는 "지금은 법원·검찰 공무원 퇴직자들이 집행관을 하므로 집행관 자신이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에 관해 교육 훈련이 돼있지 않다"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아무 교육훈련이 돼있지 않은 용역을 활용해 채무자의 신체에 유형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법원의 인권보호실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행 집행관법이 '집행보조자'의 권한이나 선임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공대호 변호사는 "극단적인 사례로 집행관이 집행 현장에서 채권자가 모집한 보조인력(용역)을 집행보조자로 선임해도 법령 위반이 없는 것으로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인도집행에 참여하는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의 행위를 법률로 규제해야 한다는 게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의 의견이다.

 현지현 변호사는 "법령에 규정이 없는 탓에 집행보조자에 의해 위법행위가 발생해도 이를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보조자를 사용함에 있어 자격기준을 엄격히 정하고 집행관이 최종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권자가 경비업자(용역)에게 불법적인 업무지시를 해 인도집행 현장에서 폭력행위가 발생해도 해당 경비업자의 허가가 취소되고 경비원이 처벌받는 외에 채권자는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다"며 "따라서 채권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강훈 변호사는 "아무런 자격도 권한도 없는 용역에게 맡겨 집행 현장을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만든다는 것은 문명국가의 법체계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행태"라며 "이런 관행은 더 이상 유지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퇴거를 거부하는 세입자를 무조건 옹호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법원의 강제집행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 김보현 판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강제집행이란 사인에 의한 자력구제를 금하는 대신 국가에 의한 구제를 인정한 것이 그 연혁이 돼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 국가권력을 바탕으로 강제적으로 사법상 이행청구권을 실현하는 법적 절차"라며 "따라서 채무자가 저항하는 경우 집행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큰 틀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다시 사적 구제를 허용하는 쪽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 집행관으로 활동했던 이형구 한국민사집행법학회 이사는 강제퇴거 집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책임을 집행관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다.

 이 이사는 "산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고 시비를 가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집행관의 행위에 대해 직무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그러면서 강제집행 현장에서 경찰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사집행법 제5조 2항은 '집행의 저항을 받을 때는 경찰 또는 국군의 원조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고 있지만 이는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조화가 되지 않는 이상 형해화된 법규정"이라며 "현장에 충돌한 경찰관은 관객으로 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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